Topic _ 사라와 하갈의 갈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창 21:8~11, "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11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성경을 구속사의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떤 이의 주장이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성경을 그렇게 읽으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5:39). 즉 성경은 우리 주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개인적으로, 거기에다 더해 지나치게 윤리/도덕적으로 읽으려는 경향이 강하고, 성경의 이야기를 하나님이 뜻하신 바를 찾아내기보다는 설교하는 목사나 읽는 독자가 자기 나름대로 그것을 해석해 내어 읽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견해가 너무 많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읽는 것은 하나님이 원래 의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으로서의 성경읽기'(구속사적 성경읽기)를 방해합니다. 이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바른 성경 해석'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반드시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읽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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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와 하갈의 이야기를 잘 아실 겁니다. 아브라함이 늙어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이를 낳지 못하자, 본처인 사라가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도록 합니다. 그리고 여종은 아이를 갖게 되고, 여종인 하갈이 임신하자 본처인 사라를 핍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신의 임신을 믿고 본처를 멸시한 하갈, 이에 대해 본처인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여종이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합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판단을 해야 옳을까요?
무엇이 옳건 간에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당신 좋을 대로 행하시오' 라는 결정을 내리고 사라는 하갈을 학대합니다. 그리고 하갈은 도망갑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는 게 좋을까요? 누가 잘못한 것일까요?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쫓겨 나간 하갈을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사라에게 복종하라'는 것으로 일단락 되는 듯합니다.
그러다 사라도 이삭을 낳게 됨으로 이제는 이스마엘과 이삭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이때 본처인 사라가 강력하게 개입하게 됩니다. "그가(사라)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인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이런 상황에서 사라는 악한 여자가 됩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임하는데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하셨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하갈을 쫓아내는데 동의하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설명해야 하는 걸까요?
본처가 둘째 부인을 싫어하면 쫓아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다는 교훈을 가르쳐야 할까요? 아니면 애초에 첩을 얻은 아브라함 잘못이다, 라고 말해야 할까요?
이 본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는 우리가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성경에 이미 해답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한 가정의 갈등으로 보도록 허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22절 이하의 내용이, 이 사건을 율법과 복음과의 관계를 보여 주는 모형으로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사라의 편을 드셨을까요?
하나님이 사라의 편을 드신 것은 그 여자가 가정에서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갈에서 태어난 자식은 율법을 상징하고, 사라에게서 태어난 자식은 복음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창세기의 하갈과 사라는
단순히 두 여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약 성경에 의하면 이 둘은 각각 '율법'과 '복음'을 상징합니다. 이들에게나 나온 아들들 역시 단순한 적출이냐 서출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율법으로부터 탄생한 종'과 '복음 즉 하늘로부터 탄생한 자유자'를 상징합니다.
그때나 오늘이나 육체를 따라 난 자들(하갈에세거 난 이스마엘)이 성경을 따라 난 자(사라에게서 난 이삭)를 핍박합니다. 창세기에서 이스마엘이 핍박한 것을 갈라디아서는 율법을 따르는 유대인들이 참 복음을 소유한 신약 교회를 핍박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해석이 이상하다구요? 이상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워낙 윤리/도덕적 해석에 젖어서 살고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이런 해석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보여 주는 구속역사입니다. 성경을 이런 식으로 읽지 않고, 모든 상황을 개인적이고 가정사적인 일로, 심리학적인 일로, 개인의 성공 신화로 읽어 버린다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깨끗이 삭제 됩니다.
결론, 우리 주변에 있는 얄팍한 해석들이 하루빨리 그리스도로 옷 입는 날이 오게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