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기도에 분량이 있을까? ①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인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마6:7)
기도에 대해 알려진 통념들 중에 한 가지는 기도의 분량이라는 개념입니다. '기도의 분량을 채워야 한다,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기도의 분량이 다 차지 못했기 때문이다' 등등 이런 개념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일을 이루려고 할 때 크고 중요한 일일수록 더 많은 기도를 필요로 하고, 그래서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개념은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과 같아지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기도가 응답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지에 의한 것인가, 우리의 정성에 의한 것인가' 라는 문제입니다.
여기에 답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게 있습니다. '기도란 뭔가'라는 개념정리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통이 우선이기 때문에 뭔가 요구해서 그에 대해 응답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기도의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기도의 작은 한 요소일 뿐이요,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감사와 회개, 즉 하나님과의 교제부분입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45주일 116문)은 기도가 무엇인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문 : 그리스도인에게 왜 기도가 필요합니까?
답 :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감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또한 하나님은 그의 은혜와 성신을 오직 탄식하는 마음으로 쉬지 않고 구하고 그것에 대해 감사하는 사람에게만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기도를 감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통상적인 기도, 곧 '응답받는 기도'에 매달리는 우리의 처지에서 볼 때는 매우 낯선 개념입니다. 우리가 쉽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만 생각해 보아도, 아들이 아버지를 볼 때마다 뭐 해 달라, 뭐 달라, 달라, 달라고만 하는 부자 관계가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듯,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같은 것입니다. 기도가 하나님과의 교제라고 한다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 자체지, 뭔가를 끈질지게 구해서 받아 버리겠다고 하는 자세는 아닙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첫 번째 문제 '그 기도가 응답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지에 의한 것인가, 우리의 정성에 의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문제가 많이 잘못 설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할 때, '하늘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결국 기도란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방편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지만,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의 기도를 위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까, 우리의 뜻입니까?
따라서 기도를 할 때 뭔가 분량을 채워서 그것으로부터 응답을 끌어내겠다는 생각은 기도의 기초적 가치관을 흔드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사고는 결국 기도의 목적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있습니다. 응답을 받겠다는 것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 보겠다는 것이요, 결국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의 의지가 반영된다기보다 자기가 중심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분량을 채우면 응답을 받게 된다는 사고방식은 애초에 하나님은 결여되어 있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에 대한 것은 없습니다. 내가 뭔가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그것은 안 하시기로 작정하셨다면 그것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진짜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