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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에 분량이 있을까? ②

대분류
기도와 응원의 편지
소분류
하루묵상
게시일
2025/07/18
소식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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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ic. 기도에 분량이 있을까? ②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인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마6:7)
어제에 이어 '기도에 분량이 있을까' 두번째 시간입니다. 기도에 채워야 할 분량이 있다거나, 혹은 더 많이 기도할수록 하나님이 들어주실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의 두 번째 문제점은 없을까요?
두 번째 문제는 '행위주의 혹은 업적주의'의 문제입니다. 기도굑가 언제부터 가톨릭처음 인간이 업적을 많이 쌓으면 그것으로 인해 결과물을 얻는 종교가 되었습니까? 우리의 기도가 언제부터 백일 치성을 드리면 그 치성드린 정성이 쌓이고 쌓여서 기도가 응답이 된다는 개념을 갖게 됐습니까?
기독교의 기도는 인간이 얼마나 행위를 많이 쌓느냐에 따라 기도가 응답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개념은 이미 중세 로마교회에서 수없이 행해졌던 것이며, 이로 인해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개념이 매장되었고, 사람들이 '자신의 선행을 쌓아 그것으로 구원을 얻어 보려고 하는' 패악으로 치달았습니다.
기독교의 기도는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탑돌이를 하거나, 수행을 쌓거나, 공을 들이면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문제 제기를 통해 '분량을 채워야 기도가 응답된다'는 식의 개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
이제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6장 7절의 '중언부언하는 기도'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 중언부언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계십니까? 사실 '중언부언'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이곳에 단 한번밖에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먼저 중언부언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은 이렇습니다. 1)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거나, 2)아무 의미 없는 말을 계속적으로 중얼대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기도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언부언하는 기도의 개념이 여기에서 끝나는 것일까요?
주님은 "중언부언하지 말라"고만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을 덧붙이셨습니다.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7절).
왜 이렇게 부연설명을 이어하셨을까요?
주님은 중언부언의 기도가 단순히 의미 없는 주문을 되풀이하는 것 뿐만 아니라, 기도를 많이 해야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개념을 비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중언부언에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곧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는 개념이 들어 있어서입니다.
조금 더 주님의 말씀을 살펴볼까요? 8절 말씀에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중언부언하는 이방인들을 본받지 말라고 하실 때, 그렇게 하지 말라는 이유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아버지께서 필요를 아시니 기도하지 말라는 듯입니다.
이 말은 결국 그들의 지금 기도하고 있는 내용이 '알 수 업는 말이나, 의미 없이 반복되는 말들'이 아니라, 뭔가를 구하는 기도임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은 말이 많이 한다고 들으시는 분이 아냐, 네가 뭘 구할지 하나님은 미리 알고 있어. 계속 구하지 마. 많이 기도하여 하나님이 들으시리라고 생각하지 마' 라는 뉘앙스입니다.
물론 우리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실제로 오늘날 현대인들은 아무리 강조해도 기도를 잘 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건 분량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에 기도가 차지하는 비중의 문제로 다루어 볼 수 있습니다.
기도는 많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틀린 것을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성도들은 기도를 열심히, 많이 해야 하지만, 하나님은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대신 우리는 이렇게 믿으면 됩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5:16),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28:9).
성도 여러분, 우리의 기도에 더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분량, 곧 얼마나 오래 기도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합다하게 기도했는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