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에스더는 본받을만한 신앙의 여인인가?
에스더서를 읽으면서 우리는 주인공을 에스더와 모르드개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더구나 에스더에서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에스더... 통상적으로 알려져 있듯이 하나님을 위해 몸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던 멋진 여정이었을까요?
첫째, 에스더가 살고 있었던 당시 역사적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포로로 잡혀가 있는 상황으로, 에스더가 있는 곳은 바사(페르시아) 였습니다. 바사왕 고레스가 포로 귀환 칙서를 내린 후 한참 뒤에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여전히 바사 제국에 살고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포로 귀환을 선택하기 보다, 일신의 안락을 위해 그 땅에 그대로 머물기를 원했다는 그런 뜻입니다. 다시 본토로 돌아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고생스럽게 모든 것을 시작하기보다 그냥 사회적으로 닦아 놓은 기반이 있는 그 땅에서 눌러 앉아 살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 역시 그런 집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둘째, 그들의 집안이 그렇다 하더라도 에스더와 모르드개 자신들의 신앙은 어떠했을까요?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왕후가 되려고 시도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다시는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로서의 정체성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일신의 영달을 위해 왕후와, 정권을 잡은 유력한 권세자가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과연 존경받을 만한 신앙의 투사로서의 자격이 있습니까?
게다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왕후가 되려 하는 것은 이런 일에는 전혀 개의치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출신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르드개는 에스더 더러, 그들이 어디 출신인지를 말하지 못하게 합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되기 위해 궁에 들어갔을 때도, 에스더는 다니엘과 전혀 다르게 행동했습니다. 다니엘은 끌려간 귀족으로서 왕궁 안에서도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려 했지만, 에스더나 모르드개는 철저히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그들 속에 흡수되려 했습니다.
일례를 들자면,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행동은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식 복제와 생활 양식을 흡수한 후, 일본 왕실 안에 들어가 그 나라의 국모가 되어, 철저한 일본인이 되려고 했던 친일파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기회주의적인 에스더나 모르드개의 모습이 우리에게 '모범'으로 적용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자꾸 성경을 인물중심으로 읽으려고 하니 성경을 단편으로 봅니다. 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면만 뽑아내어 그것을 닮자고 설교를 하고, 나쁜 사람에게는 나쁜 면만을 뽑아내어 그렇게 살지 말자고 설교를 합니다.
하지만, 에스더나 모르드개는 비록 나중에 크게 쓰임받는 도구가 되기는 했지만, 절대로 본받을 만한 인물들이 아닙니다. 이것을 무시하고 단지 "죽으면 죽으리라"의 상황만을 보는 것은 매우 큰 문제가 됩니다.
그렇다면 에스더서는 어떻게 봐야할까요?
앞서 에스더의 주인공에 대해 언급했는데, 에스더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 주는 책입니까? 에스더서의 중요한 주제는 '부림'이라는 절기와 관려되어 있습니다. 부림절은 이스라엘 대적자 하만이 이스라엘을 멸절시키려 했을 때, 하나님이 이를 어떻게 구원하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은 출세를 위해 바사를 선택하고 이스라엘을 버린 자들을 도구로 삼아,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성경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언약 백성을 어떻게 지키시는가를 만천하에 공표하신 사건이 바로 이 '부림절'과 관련된 에스더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경 말씀에서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고, 왕후 에스더를 본받자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올바른 성경해석이 될 수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만 빛나야 합니다.